화려하고 볼 것 많은 대형 서점, 주인의 취향이 담긴 개성 있는 독립서점과 북카페 등 책을 다루는 다양한 공간이 많은데요. 정작 도서관은 10대 시절 공부할 때 이후로는 거의 찾아간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서점은 상품을 팔고 구매하는 상점의 느낌이 강하다면, 도서관은 인생에서 목마름을 느낄 때 찾게 되는 개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도서관에 간다’는 그랑핸드 주변부터 시작해 서울에 있는 도서관을 한 곳씩 방문해서 살펴보는 탐방기입니다. 여덟 번째로 소개해 드릴 도서관은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남산도서관’입니다.
여러 계절의 남산이 품어온 도서관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남산도서관은 서울역이나 회현역에서 가장 가깝습니다. 각 역에서 버스로 두세 정거장, 도보로는 20분 정도 걸려요. 약간의 언덕을 오르는 것도 괜찮다면 날이 좋을 땐 운동 삼아 길을 따라 쉬엄쉬엄 걸어가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날은 은행잎이 한창 떨어지는 시기라 노란 나뭇잎이 소복하게 쌓인 길 위를 걸으며 도서관으로 향했는데요. 도서관에 가까워지자 알록달록 가을빛으로 물든 남산과 남산타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산도서관은 서울에서 최초로 세워진 공립 공공도서관이에요. 1922년에 개관하여 무려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중구에서 처음 개관한 이후 1964년 현재 용산구로 이전해, 건물이 지어진 지 60년이 넘었다고 해요. 벚꽃이 피고, 여름의 푸르름과 가을의 화려함을 지나 겨울의 눈이 소복이 내리기까지 수십 번의 계절을 지나왔을 남산의 모습을 상상하며 입구로 들어섭니다. 1층으로 들어가자 빛바랜 건물의 내벽과 천장에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맨 위층인 5층부터 차례로 내려오며 본격적으로 살펴보기로 합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배움의 공간
5층에는 열람실과 노트북실, 세미나실, 그리고 독서상담실 등이 있어요. 열람실은 지정석으로, 회원만 좌석 이용이 가능했습니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벌써 자리를 잡고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요, 앳된 얼굴의 십 대 학생부터 나이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까지 각자의 학업에 몰입하는 모습이 멋져보였습니다. 서로 다른 이유와 목표로 이 곳에 모였겠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몰입할 대상이 있는 일상은 저희 또한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런 면에서 도서관은 지금 나의 업에, 혹은 막연했던 꿈에 대한 열정을 다시 일깨워주는 공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4층으로 내려가 자연과학실과 인문사회과학실을 살펴봅니다. 특이한 점은 각 자료실마다 해당 분야에 맞는 어린이 도서 서가가 같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특이하게도 남산도서관에는 별도의 어린이 자료실이 없다고 합니다. 대신 각 자료실에 어린이 도서를 따로 비치해, 가족 단위의 이용객들이 함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각 자료실에서 어린이들이 어른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어요. 복도에서 장난치는 두 아이에게 보호자가 “여기는 어린이 도서관이 아니야”라고 가르치는 장면도 볼 수 있었죠. 이제 3층의 독서치료·어학실로 내려가봅니다.
도서관에서 독서치료실이라는 것은 처음 보았는데요, 책을 활용해 사람의 정서적, 사회적 부적응 문제를 치료하는 임상 상담의 한 분야라고 합니다.
실제로 남산 도서관에서는 독서치료 과정 중 하나로, 상황에 맞는 책을 읽으며 치료 효과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책 속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독서를 해보고, 내면에 쌓인 심리적 갈등을 말로 표현하고, 글쓰기를 통해 내면의 재구조화를 하는 등 다양한 독후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날은 개인의 상태에 맞는 키워드를 선택하면 어울리는 그림책 꾸러미를 대여해주는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나에게 필요한 위로가 담긴 책 꾸러미라니! 마치 선물을 받는 기분일 듯 합니다. 사서분들의 세심한 큐레이션이 돋보이는 프로그램으로, 책을 통해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고 독서치료에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꼭 한 번 방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제철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자리
이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내려옵니다. 조명부터 구조물까지 위층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요, 몇 년 전 리모델링된 디지털 라운지라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최근에 바뀐 공간이라 오랜만에 남산도서관을 찾은 분이라면 깜짝 놀라는 장소라고 하더라고요. 여기서는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대여할 수 있고, 잡지와 전자 신문도 열람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디지털 라운지의 핵심은 아름다운 남산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옥외 공간 ‘남산하늘뜰’입니다.
통창을 열고 나가니 남산과 그 위에 우뚝 솟은 남산타워, 넓은 하늘이 펼쳐집니다. 마치 숲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이 공간은 실제로 함께 모여 책을 읽을 수 있는 정자와 같은 형태로 디자인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실내로 돌아와 2층을 더 둘러봅니다. 남산하늘뜰 바로 건너편에는 ‘북카페 남산 1992’가 있는데요, 우드 톤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 안락하게 독서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전시된 책들 위에는 사서 분들이 직접 손으로 작성한 감상평이 메모지로 붙어있습니다.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되거나, 집어든 책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무척 도움이 되더라고요. 몇 권의 책에 대한 소개 글을 읽고는 김신지 작가의 「제철 행복」이라는 책을 집어 들고, 라운지로 나와 남산 경관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책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24절기와 알맞은 시절에 챙겨야 하는 작은 기쁨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서 분이 작성한 책 소개글과 기억에 남는 책 속 문장 몇 줄을 남깁니다.
계절의 변화를 촘촘히 느끼며 제철마다, 절기마다 놓치지 않고 챙겨야 할 작은 기쁨인 제철 행복을 선물처럼 풀어봅니다. 춘분이면 봄의 신호를 찾아 나가는 산책을, 소서엔 비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비멍을, 상강엔 막바지 단풍을 보러 남쪽으로 기차 여행을, 소설에는 겨울철 작은 기쁨의 목록 적어보기를 제철 숙제로 내줍니다. 짧게 머물다 가는 계절에 오늘의 기쁨을 선택하고 내일의 즐거움을 예약하며 행복의 순간을 늘려가는 방법을 전합니다. - 왕아름 사서
봄의 벚꽃에 비해 단풍은 좀 너그러운 구석이 있다. 벚꽃 명소를 부러 찾아가야 했던 봄과 달리 단풍은 주변을 둘러보면 어디에나 있으니까. 높은 산에서 시작된 단풍이 마을이나 도심까지 내려오면 출근길의 거리에서, 아파트 단지에서, 근린 공원에서 단풍 든 나무를 향해 휴대폰을 들어 올리며 한껏 진지해지는 얼굴들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비슷한 폰 케이스를 쓰는 엄마 아빠 연배의 어른들은 일단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휴대폰을 덮고 있던 뚜껑부터 활짝 여는데, 그게 꼭 옛날 반짇고리 같은 보물함을 뚜껑 여는 손길 같다. 이걸 담아 가야지, 하면 뚜껑을 열고 잘 그러담은 후에 다시 뚜껑을 닫는다. 가을이 매년 돌아온대도 올해의 단풍을 찍어두지 않을 수 없는 그 마음도 함께 담기겠지. p. 249
자연스럽게 산다는 건 결국 계절의 흐름을 알고, 계절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도 알고, ‘제때’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했던 옛사람들과 동식물처럼 사는 것.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하기로 되어 있는 흐름에 내 걸음을 맞추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면, 불필요한 가지가 바람에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꼭 필요치도 않은 것을 이것저것 매달고 여태 그것을 풍성함이라 여기며 살았던 건 아닐까. p. 333
한 해를 사계절이 아닌 ‘이십 사계절’로 나눠, 계절의 속도에 맞춰 걸으며 일상에서 더 촘촘하게 기쁨을 찾는 법을 제안하는 책이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통창으로 보이는 가을 풍경을 바라보니, 아무런 대가 없이 찾아온 계절의 즐거움을 나에게 선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층에는 노래도 잔잔하게 흐르고 있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편안하게 책 한 권을 금세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을 다 읽었으니 배도 채울 겸 1층의 식당으로 가보았습니다. 보통 도서관 구내식당에 오면 백반을 먹어보는 편인데, 남산도서관은 주말에는 백반 메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처음 보는 메뉴인 오므돈가스(?)를 주문해 봤습니다. 예상대로 오므라이스 위에 돈가스가 함께 나왔는데요. 눅눅하지 않고 바삭한 돈가스에 따뜻한 소스도 넉넉하게 얹어져 있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므라이스와 돈가스 모두 먹고 싶을 때 드셔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식당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점심시간임에도 기다림 없이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식당 바로 옆에는 매점과 휴게 공간이 있어, 도서관을 이용하다가 군것질을 하고 싶을 때 잠시 쉬어가기에 좋겠더라고요.
아침 일찍 도서관에 들어와 어느새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도서관 구경을 마친 후 둘레를 따라 걷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남산공원 백범광장이 나오는데요, 억새와 단풍 명소로도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광장을 한 바퀴 돌고, 옆으로 펼쳐진 남산 성곽길을 따라 내려왔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살면서 어느샌가 아끼던 공간이 사라지고, 추억이 깃든 장소가 없어진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것 같은데요. 도서관은 모습이 조금 달라질지언정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든 그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든든해지는 기분도 들고요. 배움과 위로가 필요할 때 도서관을 찾고, 계절과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순간들을 눈에 담으며 일상을 풍요롭게 채워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산도서관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소월로 109
운영 시간: 평일 09:00~18:00, 20:00 (자료실마다 상이), 주말 09:00~17:00, 열람실/노트북실 07:00~22:00 (하절기), 08:00~22:00 (동절기)
휴관일: 매월 첫째, 셋째 월요일, 일요일을 제외한 공휴일(단, 일요일과 법정 공휴일이 겹치는 경우 휴관)
주차: 07:00~23:00 운영, 주차 요금 최초 1시간 무료, 초과 시 5분당 150원
화려하고 볼 것 많은 대형 서점, 주인의 취향이 담긴 개성 있는 독립서점과 북카페 등 책을 다루는 다양한 공간이 많은데요. 정작 도서관은 10대 시절 공부할 때 이후로는 거의 찾아간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서점은 상품을 팔고 구매하는 상점의 느낌이 강하다면, 도서관은 인생에서 목마름을 느낄 때 찾게 되는 개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도서관에 간다’는 그랑핸드 주변부터 시작해 서울에 있는 도서관을 한 곳씩 방문해서 살펴보는 탐방기입니다. 여덟 번째로 소개해 드릴 도서관은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남산도서관’입니다.
여러 계절의 남산이 품어온 도서관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남산도서관은 서울역이나 회현역에서 가장 가깝습니다. 각 역에서 버스로 두세 정거장, 도보로는 20분 정도 걸려요. 약간의 언덕을 오르는 것도 괜찮다면 날이 좋을 땐 운동 삼아 길을 따라 쉬엄쉬엄 걸어가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날은 은행잎이 한창 떨어지는 시기라 노란 나뭇잎이 소복하게 쌓인 길 위를 걸으며 도서관으로 향했는데요. 도서관에 가까워지자 알록달록 가을빛으로 물든 남산과 남산타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산도서관은 서울에서 최초로 세워진 공립 공공도서관이에요. 1922년에 개관하여 무려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중구에서 처음 개관한 이후 1964년 현재 용산구로 이전해, 건물이 지어진 지 60년이 넘었다고 해요. 벚꽃이 피고, 여름의 푸르름과 가을의 화려함을 지나 겨울의 눈이 소복이 내리기까지 수십 번의 계절을 지나왔을 남산의 모습을 상상하며 입구로 들어섭니다. 1층으로 들어가자 빛바랜 건물의 내벽과 천장에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맨 위층인 5층부터 차례로 내려오며 본격적으로 살펴보기로 합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배움의 공간
5층에는 열람실과 노트북실, 세미나실, 그리고 독서상담실 등이 있어요. 열람실은 지정석으로, 회원만 좌석 이용이 가능했습니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벌써 자리를 잡고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요, 앳된 얼굴의 십 대 학생부터 나이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까지 각자의 학업에 몰입하는 모습이 멋져보였습니다. 서로 다른 이유와 목표로 이 곳에 모였겠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몰입할 대상이 있는 일상은 저희 또한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런 면에서 도서관은 지금 나의 업에, 혹은 막연했던 꿈에 대한 열정을 다시 일깨워주는 공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4층으로 내려가 자연과학실과 인문사회과학실을 살펴봅니다. 특이한 점은 각 자료실마다 해당 분야에 맞는 어린이 도서 서가가 같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특이하게도 남산도서관에는 별도의 어린이 자료실이 없다고 합니다. 대신 각 자료실에 어린이 도서를 따로 비치해, 가족 단위의 이용객들이 함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각 자료실에서 어린이들이 어른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어요. 복도에서 장난치는 두 아이에게 보호자가 “여기는 어린이 도서관이 아니야”라고 가르치는 장면도 볼 수 있었죠. 이제 3층의 독서치료·어학실로 내려가봅니다.
도서관에서 독서치료실이라는 것은 처음 보았는데요, 책을 활용해 사람의 정서적, 사회적 부적응 문제를 치료하는 임상 상담의 한 분야라고 합니다.
실제로 남산 도서관에서는 독서치료 과정 중 하나로, 상황에 맞는 책을 읽으며 치료 효과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책 속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독서를 해보고, 내면에 쌓인 심리적 갈등을 말로 표현하고, 글쓰기를 통해 내면의 재구조화를 하는 등 다양한 독후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날은 개인의 상태에 맞는 키워드를 선택하면 어울리는 그림책 꾸러미를 대여해주는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나에게 필요한 위로가 담긴 책 꾸러미라니! 마치 선물을 받는 기분일 듯 합니다. 사서분들의 세심한 큐레이션이 돋보이는 프로그램으로, 책을 통해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고 독서치료에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꼭 한 번 방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제철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자리
이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내려옵니다. 조명부터 구조물까지 위층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요, 몇 년 전 리모델링된 디지털 라운지라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최근에 바뀐 공간이라 오랜만에 남산도서관을 찾은 분이라면 깜짝 놀라는 장소라고 하더라고요. 여기서는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대여할 수 있고, 잡지와 전자 신문도 열람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디지털 라운지의 핵심은 아름다운 남산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옥외 공간 ‘남산하늘뜰’입니다.
통창을 열고 나가니 남산과 그 위에 우뚝 솟은 남산타워, 넓은 하늘이 펼쳐집니다. 마치 숲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이 공간은 실제로 함께 모여 책을 읽을 수 있는 정자와 같은 형태로 디자인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실내로 돌아와 2층을 더 둘러봅니다. 남산하늘뜰 바로 건너편에는 ‘북카페 남산 1992’가 있는데요, 우드 톤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 안락하게 독서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전시된 책들 위에는 사서 분들이 직접 손으로 작성한 감상평이 메모지로 붙어있습니다.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되거나, 집어든 책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무척 도움이 되더라고요. 몇 권의 책에 대한 소개 글을 읽고는 김신지 작가의 「제철 행복」이라는 책을 집어 들고, 라운지로 나와 남산 경관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책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24절기와 알맞은 시절에 챙겨야 하는 작은 기쁨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서 분이 작성한 책 소개글과 기억에 남는 책 속 문장 몇 줄을 남깁니다.
한 해를 사계절이 아닌 ‘이십 사계절’로 나눠, 계절의 속도에 맞춰 걸으며 일상에서 더 촘촘하게 기쁨을 찾는 법을 제안하는 책이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통창으로 보이는 가을 풍경을 바라보니, 아무런 대가 없이 찾아온 계절의 즐거움을 나에게 선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층에는 노래도 잔잔하게 흐르고 있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편안하게 책 한 권을 금세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을 다 읽었으니 배도 채울 겸 1층의 식당으로 가보았습니다. 보통 도서관 구내식당에 오면 백반을 먹어보는 편인데, 남산도서관은 주말에는 백반 메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처음 보는 메뉴인 오므돈가스(?)를 주문해 봤습니다. 예상대로 오므라이스 위에 돈가스가 함께 나왔는데요. 눅눅하지 않고 바삭한 돈가스에 따뜻한 소스도 넉넉하게 얹어져 있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므라이스와 돈가스 모두 먹고 싶을 때 드셔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식당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점심시간임에도 기다림 없이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식당 바로 옆에는 매점과 휴게 공간이 있어, 도서관을 이용하다가 군것질을 하고 싶을 때 잠시 쉬어가기에 좋겠더라고요.
아침 일찍 도서관에 들어와 어느새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도서관 구경을 마친 후 둘레를 따라 걷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남산공원 백범광장이 나오는데요, 억새와 단풍 명소로도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광장을 한 바퀴 돌고, 옆으로 펼쳐진 남산 성곽길을 따라 내려왔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살면서 어느샌가 아끼던 공간이 사라지고, 추억이 깃든 장소가 없어진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것 같은데요. 도서관은 모습이 조금 달라질지언정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든 그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든든해지는 기분도 들고요. 배움과 위로가 필요할 때 도서관을 찾고, 계절과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순간들을 눈에 담으며 일상을 풍요롭게 채워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산도서관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소월로 109
운영 시간: 평일 09:00~18:00, 20:00 (자료실마다 상이), 주말 09:00~17:00, 열람실/노트북실 07:00~22:00 (하절기), 08:00~22:00 (동절기)
휴관일: 매월 첫째, 셋째 월요일, 일요일을 제외한 공휴일(단, 일요일과 법정 공휴일이 겹치는 경우 휴관)
주차: 07:00~23:00 운영, 주차 요금 최초 1시간 무료, 초과 시 5분당 15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