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m]기치조지 탐방기: 에도 도쿄 건축정원, 이노카시라 공원

25 Ap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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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도심뿐만 아니라 근교에도 둘러볼 매력적인 동네들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인 기치조지는 도쿄 서쪽에 위치한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지역으로,

넓은 공원과 감도 높은 상점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도심과의 접근성도 좋아 ‘일본인이 살고 싶은 동네’ 순위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곤 하지요.


벚꽃이 만개하기 직전이었던 3월의 마지막 주,

워크샵 기간 중 하루 동안 기치조지를 천천히 걸으며 대표적인 장소인 ‘이노카시라 공원’과

조금 덜 알려졌지만 그만큼 더 특별했던 ‘에도 도쿄 건축정원’을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과거로의 시간여행


‘에도 도쿄 건축정원’은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일본 건축물을 보존 및 복원해 전시하는 야외 박물관입니다.

약 2만 평 규모의 넓은 부지에 실제 건물을 이전해 재현해 놓았기 때문에

단순히 건축을 보는 것을 넘어 ‘시간의 결’까지 함께 거닐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에요.



박물관을 안내하는 표지판. 아래의 그려진 캐릭터는 ‘에도마루’라는 이름의 박물관 마스코트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입장 전 한쪽에 비치된 양산과 우산.

3월 말의 날씨임에도 햇살이 제법 강하게 느껴졋었는데요,

꽤 넓은 야외를 걸어야 하다 보니 한여름에는 각오가 필요할듯 합니다.




1925년, 도시 근대의 단면을 담은 공간


가장 먼저 마주한 건물은 ‘오카와 저택’입니다.

1925년, 도쿄 오타구의 고급 주택가에 지어진 이 주택은

서양식 구조와 일본 전통 양식이 혼합된 근대 일본 가옥의 형태를 보여줍니다.








응접실, 식당, 침실, 서재 등으로 구성된 이 저택은

전체적인 구조와 분위기에서 20세기 초 일본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었어요.

1925년에 지어진 집이라니,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어딘가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당시 한국은 일제강점기 중반기로, 일본과 한국 모두 ‘모던’이라는 이름 아래 도시화와 근대화의 물결 속에 있었습니다.



 


공간은 철학의 물리적 구현: 마에카와 쿠니오 자택


다음으로 향한 곳은 에도 도쿄 건축정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장소 중 하나인 ‘마에카와 쿠니오 자택’입니다.

1942년, 일본 근대 건축의 거장 마에카와 쿠니오가 직접 설계하고 지은 이 집은 그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

실제 거주 공간이자 동시에 사무실로 사용되었던 특별한 건축물입니다.





기능주의적이고 간결한 디자인 철학이 집 안 곳곳에 반영되어 있으며,

높은 층고의 복층 구조와 따뜻한 채광, 효율적인 공간 배치가 인상적입니다.

건축가가 만든 공공 건축물은 우리가 쉽게 방문할 수 있어도,

건축가의 집은 쉽게 경험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위 사진과 같은 구도로 촬영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전문 카메라를 들고 모여 있었는데요,

설계자의 사적 공간을 직접 둘러볼 수 있다는 점에서 건축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공간이었습니다.





오래된 계급의 흔적


다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에도시대 후기에 활동한 무사 조직 ‘천인동심’의 조장이 거주하던 전통 가옥입니다.

일종의 자위 조직으로 치안 유지나 운송 보호 등을 맡았으며, 무사로서 무장을 유지한 상태로 활동한 특수한 집단이었다고 하네요. 


그 조직의 지도자가 실제로 거주하던 주택으로 당시 건축적 위계와 생활 구조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농가보다 더 넓은 규모와 격식을 갖춘 구조로 회의나 공적인 활동도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하더라구요.

한 마디로 그냥 ‘사람이 생활하던 집’이 아니라 지위와 역할, 그리고 당시 사회 질서의 잔상이 남아있던 공간이었습니다. 


설명만 듣고서는 ‘그냥 대장 사무라이의 집이라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좀 더 찾아본 바,

‘천인동심’은 에도시대 일본에서 신분이 낮은 사람 출신이지만 치안과 정보 업무를 맡던 하급 경찰 조직이라고 합니다.

공식적 권한은 작았지만 실무와 위험한 일은 많이 도맡았던 계층으로, 무사도 아니고 일반 백성도 아닌 경계선 위의 존재였다고 해요.

무사 조직 안에도 여러 세부조직이 있다니, 신기합니다.




대의 끝에서 아스라진 이의 공간


한 쪽에 제대로 자리한 이 전통 가옥은 메이지에서 쇼와 초기까지

일본의 정치와 경제를 이끌었던 인물, ‘다카하시 고레키요’의 자택입니다.

1902년, 도쿄 아카사카(현재 미나토구)에 6,600㎡ 규모로 세워졌던 이 저택은

일본 전통 목조 구조를 바탕으로 하되, 정원 쪽으로 길게 나 있는 유리 미닫이문 등에서

당시 일본 상류층의 ‘근대화된 미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카하시는 서민 출신으로 가난했지만 영어를 독학하고 미국 유학도 경험하며,

노예 신분으로 팔려가려다 탈출한 적도 있을 만큼 다사다난한 과거를 딛고 일본은행 총재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 과감한 경기 부양 정책을 펼쳐 미국보다 훨씬 빠르게 대공황에서 벗어나

경제를 회복시킨 정책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1936년, 일본 군부 내 급진 청년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주요 정치인을 암살한 2.26 사건이 발생했고,

당시 재무대신이었던 다카하시 또한 군부의 과도한 군비 지출을 억제하려 했다는 이유로 암살당하며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 저택이 지어진 1902년, 우리나라는 대한제국 시기로 한국을 둘러싸고 러시아나 일본 등

열강들의 대립들이 본격화되는 시기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제국주의의 전성기로 메이지유신 이후

유럽 문화를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근대’라는 개념을 자신들만의 미의식으로 재해석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일본이라는 나라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해도 ‘서양의 문화를 다루는 내면의 태도’ 자체가

우리나라와 완전히 다르다는 인상을 종종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양 문화를 어디까지나

‘외부의 것’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일본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국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달까요?


그건 아마도 외부 문명을 수용하는 방식에서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은 서양의 기술과 제도, 복식, 건축, 예술 전반을 받아들이고 모두 일본식으로 재해석하여

‘일본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내 것’처럼 여기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처럼 서양을 따라가야할 ‘롤 모델’이 아닌 내 것으로 만드는 ‘도구’로서 받아들인 것입니다.


표면적인 것을 모방하는 것과 구조적으로 흡수하는 것에는 생각보다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요즘 사람들이 다양한 버터나 시즈닝 등 생소한 해외 식재료에 대해 관심이 많지만,

이를 ‘간장계란밥’ 수준의 진짜 생활 속 식문화에서 사용하지는 않는 것 처럼요.




왠지 영화 ‘아가씨’가 생각나는 집.





반대편으로 이동하면 근대 일본의 생활과 문화를 재현한 상점들이 테마파크처럼 형성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화장품 가게, 만물상, 목욕탕 등이 실제 건축 구조와 함께 진짜 같은 디테일로 전시되어 있어

단순한 관람 이상의 몰입감이 있더라구요.


우리에게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사소한 디테일은 전혀 다른,

마치 ‘평행 세계 동네’를 산책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화장품 가게







일본의 목욕탕.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뜯어보면 다 다른 것이 참 신기합니다.




에도 도쿄 건축정원을 다 둘러보고 뒤 기치조지 동네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마천루같은 높은 건물이 많이 없어 하늘이 잘 보이고,

상점가와 주택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분위기가 무척 매력적인 동네였어요.




우리 동네에도 있었으면! 이노카시라 공원


기치조지 역에서 조금 걸으면 만날 수 있는 이노카시라 공원.

이노카시라 공원은 1917년에 개방되어 100년이 넘은 역사를 지닌 공원으로, 특히 지브리 미술관이 있어 더 유명합니다.

원래는 에도 시대에 도쿠가와 가문이 사용하던 매 사냥터였으나,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면서 연못의 물을 상수로 사용하였고,

시간이 흘러 이후 점차 일반 시민에게 개방되며 지금의 공원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공원으로 진입하는 길에 유명한 차이라떼를 파는 곳이 있는데요, 일단 공원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 마셔볼게요.










이곳에서 보트를 탄 연인은 결국 헤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구요.

서울의 덕수궁 돌담길처럼, 일본에서도 비슷한 도시 전설이 있었습니다.




공원은 규모가 많이 크지는 않아서 딱 한 바퀴 돌기에 좋은 곳이었어요.

앉을 곳도 많고, 근처 동물원 등 볼거리도 많아 남녀노소 다 같이 찾아와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벚꽃이 피었더라면 정말로 예뻤을 것 같아요.







공원을 한 바퀴 다 돌고 다시 차이라떼 맛집이라는 곳에 왔습니다.




굳이 안 마셔도 될 것 같은 맛. (그래도 다 마셨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기치조지 제대로 구경하기.








기치조지 거리에는 의류, 소품, 도자기 등 리빙 제품까지 다양하고 독립적인 상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요.

도쿄 중심지가 대형 쇼핑몰과 플래그십 스토어 위주라면,

이 곳은 동네의 리듬을 유지하면서도 있을 건 다 갖춘 구성이 매력적입니다.




박스에 가격을 적어놓은 모습까지 우리나라 재래시장과 비슷한 풍경.






상점가 거리를 벗어나 주택가도 거닐어 봅니다.






그렇게 걷다보니 다시 기치조지 역으로.







어느덧 하루가 훌쩍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기치조지라는 동네는 빠르게 소비되는 도시의 시간 속에서도 자신만의 속도와 결을 유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람이 직접 걷고 머물며 바라보고 감각할 수 있는, 도시의 단면과 일상의 리듬이 잘 보존된 장소랄까요?


과거의 건축 속을 거닐고, 자연 속을 산택하고, 소소한 상점가를 마주하는 하루의 탐방은

그 자체로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읽는 것과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는 이 시대에도

이처럼 조용히 오래 남는 감정과 장소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브랜드가 추구해야할 태도와 닮아 있지 않을까 싶었던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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