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찬란하게 만개할 봄의 기도

22 Ma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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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냘프고 앙상했던 가지에 언제 그랬냐는 듯 조금씩 푸른 새싹이 돋아나는 계절, 어느덧 봄이 다시 찾아왔다. 봄은 내게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추위에 유독 약한 데다, 유난히 춥고 힘든 겨울을 경험했던 적이 있는 나는 이후로 완연한 봄을 기다리기까지의 시간이 유독 길게 느껴진다. 그래서 아름답고 짙은 향기로 만개하는 봄이 더욱 찬란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11월이었다. 집에 갔더니 집안 분위기가 유독 싸늘했다.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분위기, 마치 아무도 없는 듯이 집안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오빠는 늘 집에 있었는데. 그가 마지막 회사를 그만둔 지 어언 2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종종 동네에서 아르바이트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가 유별난 건지, 사회가 그를 품어주지 않는 건지. 회사에 길게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면 집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던 그에게 가족들은 모두 그가 유별나다고 핀잔을 늘어놓았다. 나 역시 그가 사회생활을 못 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하고.

 

그날이었다. 그가 그렇게 입을 꾹 닫아버린 게. 그는 마치 표정을 잃은 사람 같았다.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금씩 말수가 줄어들다가 결국 입을 꾹 닫아버린 그는 ‘어떻게 살 것인지’에 관해 물었을 때도 묵묵부답이었다. 표정과 말을 잃어버린 자리에는 불안과 물건에 대한 집착이 자리했다. 그날 이후 그는 늘 무언가를 찾았다.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그리고 물건처럼 밖에 나간 가족들도 찾았다. “오늘만 제발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 달라”고 간곡히 청하면서.

 

혹시라도 가족들이 밖에 나가서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어디서 출발했는지 모를 감정들이 그를 에워쌌다. 이제서야 우리는 그가 아프다는 걸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다. 밖에 나간 가족들은 몇 시간에 한 번씩 안부를 묻는 그의 전화를 감내해야만 했다. 그 안부는 애석하게도 단순히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가 아닌 엄중한 안부였다. 그가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그런 전화를 받는 가족들은 당혹스러움과 동시에 짜증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우울함에 대한 무지가 컸던 시기였다. 우울한 마음,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쉬쉬하던 분위기였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그는 조금씩 더 심각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물건을 잃어버렸다며 온 집안의 물건을 다 꺼내 놓는가 하면, 누군가 그 물건을 가져갔다고 의심하는 조현병까지 앓게 됐다. 놀란 가족들은 부랴부랴 그를 데리고 병원에 찾아가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를 시작했다. 상담 치료를 하는 선생님을 통해 그가 사회에서 계속된 실패의 경험과 부적응으로 이런 병을 앓게 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사회에서 실패의 경험을 적립할 때마다 가족들은 다정한 위로 대신 실패의 경험에 생채기를 더하기 바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럴 때마다 그의 마음은 조금씩 병들고 있었다. 다행히 약도 먹고, 상담도 받으며 그의 조현병 증상은 호전되기 시작했다. 조현병은 흔히 유전적인 병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행히 그는 일시적인 증상이었다.

 

그런데도 태어나 처음 겪는 일이었다. ‘가족이 아픈 일’. 게다가 ‘아픈 부위가 마음이라니’. 가족이 아프면 비로소 알게 되는 슬픔의 감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직접 겪게 되기 전까지는 ‘살면서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 마음들이다. 처음 겪는 일에 당황스럽기도 화가 나기도 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오만하고 우스운 생각처럼 느껴지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날들, 어두운 긴 터널 같은 시간을 견디게 해준 단단하고도 울림 있는 한 문장이 있었다.

 

“해가 뜨기 전 새벽이 제일 어둡다.”

 

치료를 받으며 호전되기는 했지만, 완벽히 낫기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당연히 가족들의 힘듦도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때의 내가 이 문장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때 어디에 기대어 마음 시린 겨울을 버텼을까. 당시의 나는 가족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을뿐더러, 용기도 없었다. 게다가 말을 꺼낸다는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상했다. 당시 나는 원하던 회사에 입사를 앞두고 있었고, 즐거운 시절만 펼쳐질 것 같았다. 어쩌면 내 인생의 황금기가 찾아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내 삶에서 그의 존재만 뺀다면 완전무결한 인생일 거라는 생각을 꽤 많이 했다.

 

이 문장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도 끝이 있듯이, 지금 깊고 심연의 어두움 속에 있다고 느낄지라도, 결국 찬란한 아침이 밝을 거라는 희망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해주었다. 활자가 주는 힘은 이토록 대단하다. 이후로 나는 이 말을 어둠 속 가로등 삼아 스스로를 다독이고, 비가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마음으로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모으고, 가다듬기를 반복했다.

 

그로부터 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최근 넷플릭스에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드라마를 봤다. 우울증, 조현병, 망상 등의 정신병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나오는 걸 보면서 오빠가 겪은 아픔이 사회에서 이전보다 많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꼈다.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이 많이 회복된 모습으로 가족들과 도란도란 둘러앉아 덤덤하게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상황에 무척 감사했다.

 

지금의 그는 아팠던 시절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표정이 없던 그의 얼굴에 자주 웃음꽃이 피어나고, 앙다문 그 입에서 많은 이야기가 쏟아진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느낀다. 드라마에는 마음의 감기로 여겨지는 우울한 마음은 누구에게나 불현듯 찾아올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우리가 어떤 잘못을 한 게 아니라, 그가 어떤 잘못된 선택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에게 마음의 감기가 잠시 찾아온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정리하지 못했던 서랍이 정리된 것 같았다. 그렇게 죄책감에서 조금 해방될 수 있었다.

 

가족이 아프고 그에게 찾아온 마음의 병이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에서 ‘사랑에 대한 단상’에 대해 새로이 깨달았다. 어떤 약물 치료도 상담 치료도 해줄 수 없는 근본적인 치료가 사랑에서 출발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그가 아팠던 이유가 우리 가족에게 사랑의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었던 건 아닐까. 가장 가깝고 편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 쉽게 상처를 주는 존재가 가족이기에.

 

이후 가족들은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 모진 말은 삼키고, 싸움이 될 만한 일을 크게 만들지 않고 지내는 연습을 했다. 하루아침에 잘 될 턱이 없기 때문에 매일매일 조금씩 나아지기를 연습했다. 시행착오가 있던 시간을 관통하며 가족 모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마음이 굳건하게 남아 있다. 가족에게는 아프지만 감사한 상흔이 됐다. 살면서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므로.

 

초봄에는 그 시절의 오빠와 가족들의 모습이 스친다. 그리고 매년 조금씩 서로를 치유해 가는 가족들의 모습이 중첩되어 스친다. 꽃샘추위에 여전히 두꺼운 옷을 꺼내며, 지치기도 하는 겨울의 끝자락. 초봄의 모습은 이처럼 다양하다. 어떤 이는 봄을 기다리며 얇은 옷으로 추위를 견디고, 또 어떤 이는 한겨울에 입던 패딩으로 초봄을 난다. 어떤 이에게는 이미 봄이고, 어떤 이들에게 아직 겨울인 계절, 따듯하고 찬란하게 만개할 각자의 완연한 봄을 기다리며 초봄의 오늘을 잘 살아내기를.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그에게 전하는 나의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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