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Unsplash의 Dan Lazar
우리는 기억에 둘러싸인 채 살아간다. 어제의 증명이 오늘인 것처럼, 지금도 곧 기억이 될 테다. 옷장 한켠, 수납함에 포개어진 지난 계절의 기억은 꺼낼 때마다 묘한 기시감을 동반한다. 시간에 뭉개진 섬유 사이 냄새 분자들. 오래된 얼룩이 그림처럼 새겨진 쉬폰 스커트, 빛바랜 반팔 셔츠를 펼쳤다가 반듯이 접는다. 올해도 버리지 못한 티셔츠는 옷장 귀퉁이에 내려 놓는다. 기억의 껍데기 같은 옷가지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깃들어 있다. 옷장 정리는 그것들을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기억의 무덤을 헤집는 일이다. 몇 계절을 지나온 티셔츠에 얼굴을 파묻고 팔을 끼워 넣으면 오래된 향 같은 잔해가 부유한다. 파삭 말라버린 나무 위 그을음을 닮은 향이다. 낡은 냄새 분자는 어떤 그리움을 가져다준다. 그리움의 자취를 더듬다 보면 말간 얼굴, 목소리, 풍경의 파편이 빗발친다. 사물은 그 자체로 존재를 증명한다고 했던가. 어떤 순간을 살아낸 인간의 표피 같은 옷을 내려다본다. 지나온 시간만큼 누적되는 그리움을 가만히 곱씹는다. 특정 순간이 그리워질 때마다, 누군가를 추억할 때마다, 커다란 사탕을 삼키는 것처럼 목뒤의 묵직한 이물감을 느낀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눈꺼풀을 내리고 까마득한 적막 위에 존재를 더듬다. 분명한 상이 그려지진 않지만, 온도와 명암이 느껴지는 기억. 확신한다. 언젠가 그리움으로, 추억으로 살아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움이 비대해질수록 현재를 그러쥐는 습관은 굳어진다. 잊고 싶지 않다. 그날도 그랬다. 어쩌면 풍경을 모으듯 촘촘히 오늘을 기억하는 습관은 그날에서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최초의 기억이자, 최초의 그리움이 된 그날에서.
그날의 나는 폐장 무렵 놀이공원에서 흙먼지와 약간의 비릿한 물 냄새를 묻히고 있다. 나의 키는 식당의 바 테이블보다 조금 작았고, 대부분의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지친 기색 없이 공원을 누비던 아이는 하늘에 노란빛이 번져갈 무렵, 바닥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분수 사이 가만가만 발끝을 적셨다. 운동화는 조금 끈적했고, 발 끝이 퉁퉁 불 정도로 물에 잠겨 있었다. 사아아, 사아아. 일정한 리듬을 지닌 물줄기를 바라본다. 놀이기구가 발산하는 화려한 불빛 위 흩뿌려지는 물방울은 밤하늘의 불꽃놀이를 닮았다. 반짝 솟아오르고 바닥으로 하강하는 것마저. 물방울 사이 손을 뻗는 나를 부여잡는 건 노을처럼 웃는 아빠와 엄마의 얼굴이다. 그들의 손에 이끌려 회전목마에 올랐다. 눅눅한 플라스틱 의자, 철로 된 손잡이의 차가운 감촉과 푸스스 흩어지는 땀 냄새 같은 것들이 자욱하다. 빙그르르 회전하면 언제나 같은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사람을 마주할 수 있는 놀이기구다. 그때 내게 놀이기구의 속도나 스펙터클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 놀이기구의 진정한 재미는 동그란 여정 속에 다시 볼 누군가가 있다는 거니까. 한 지점에 서 있는 사람은 어김없이 돌아오는 나를 반기고,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든다. 구름이 느리게 흐르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나직하다. 놀이기구가 무한한 동력을 얻어 멈추지 않는다고 해도,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서 나를 향해 웃어줄 것만 같다. 기억해야지. 기억해야지. 누구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읊조린다. 허공에 붕 뜬 다리를 좌우로 흔들며 손을 번쩍 치켜든다. 내가 웃는 이유를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때의 내가 시간의 속성을 알고 있더라면, 분명 이 순간이 멈추길 고대했을 테다.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당도하는 순간, 그 사실이 기쁨이 되는 순간을.
빛을 잃을 때면, 어김없이 그날로 돌아간다. 동그랗게 돌아 사랑하는 사람과 조우한다. 타인의 무심함에 지쳐버린 날, 결국 혼자됨을 감각하는 모든 순간. 나는 공전하는 회전목마에 앉아 목도했던 다정의 자취를 다시금 확인한다. 닳지 않는 기쁨, 반짝이는 얼굴들. 그 기억은 몇 번이고 다정에 기댈 동력이 된다. “내가 여기 있어”라고 말하는 존재가 주는 위안은 거대하다. 빙그르르 돌아오는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싶다.
사진: Unsplash의 Dan Lazar
우리는 기억에 둘러싸인 채 살아간다. 어제의 증명이 오늘인 것처럼, 지금도 곧 기억이 될 테다. 옷장 한켠, 수납함에 포개어진 지난 계절의 기억은 꺼낼 때마다 묘한 기시감을 동반한다. 시간에 뭉개진 섬유 사이 냄새 분자들. 오래된 얼룩이 그림처럼 새겨진 쉬폰 스커트, 빛바랜 반팔 셔츠를 펼쳤다가 반듯이 접는다. 올해도 버리지 못한 티셔츠는 옷장 귀퉁이에 내려 놓는다. 기억의 껍데기 같은 옷가지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깃들어 있다. 옷장 정리는 그것들을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기억의 무덤을 헤집는 일이다. 몇 계절을 지나온 티셔츠에 얼굴을 파묻고 팔을 끼워 넣으면 오래된 향 같은 잔해가 부유한다. 파삭 말라버린 나무 위 그을음을 닮은 향이다. 낡은 냄새 분자는 어떤 그리움을 가져다준다. 그리움의 자취를 더듬다 보면 말간 얼굴, 목소리, 풍경의 파편이 빗발친다. 사물은 그 자체로 존재를 증명한다고 했던가. 어떤 순간을 살아낸 인간의 표피 같은 옷을 내려다본다. 지나온 시간만큼 누적되는 그리움을 가만히 곱씹는다. 특정 순간이 그리워질 때마다, 누군가를 추억할 때마다, 커다란 사탕을 삼키는 것처럼 목뒤의 묵직한 이물감을 느낀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눈꺼풀을 내리고 까마득한 적막 위에 존재를 더듬다. 분명한 상이 그려지진 않지만, 온도와 명암이 느껴지는 기억. 확신한다. 언젠가 그리움으로, 추억으로 살아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움이 비대해질수록 현재를 그러쥐는 습관은 굳어진다. 잊고 싶지 않다. 그날도 그랬다. 어쩌면 풍경을 모으듯 촘촘히 오늘을 기억하는 습관은 그날에서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최초의 기억이자, 최초의 그리움이 된 그날에서.
그날의 나는 폐장 무렵 놀이공원에서 흙먼지와 약간의 비릿한 물 냄새를 묻히고 있다. 나의 키는 식당의 바 테이블보다 조금 작았고, 대부분의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지친 기색 없이 공원을 누비던 아이는 하늘에 노란빛이 번져갈 무렵, 바닥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분수 사이 가만가만 발끝을 적셨다. 운동화는 조금 끈적했고, 발 끝이 퉁퉁 불 정도로 물에 잠겨 있었다. 사아아, 사아아. 일정한 리듬을 지닌 물줄기를 바라본다. 놀이기구가 발산하는 화려한 불빛 위 흩뿌려지는 물방울은 밤하늘의 불꽃놀이를 닮았다. 반짝 솟아오르고 바닥으로 하강하는 것마저. 물방울 사이 손을 뻗는 나를 부여잡는 건 노을처럼 웃는 아빠와 엄마의 얼굴이다. 그들의 손에 이끌려 회전목마에 올랐다. 눅눅한 플라스틱 의자, 철로 된 손잡이의 차가운 감촉과 푸스스 흩어지는 땀 냄새 같은 것들이 자욱하다. 빙그르르 회전하면 언제나 같은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사람을 마주할 수 있는 놀이기구다. 그때 내게 놀이기구의 속도나 스펙터클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 놀이기구의 진정한 재미는 동그란 여정 속에 다시 볼 누군가가 있다는 거니까. 한 지점에 서 있는 사람은 어김없이 돌아오는 나를 반기고,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든다. 구름이 느리게 흐르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나직하다. 놀이기구가 무한한 동력을 얻어 멈추지 않는다고 해도,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서 나를 향해 웃어줄 것만 같다. 기억해야지. 기억해야지. 누구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읊조린다. 허공에 붕 뜬 다리를 좌우로 흔들며 손을 번쩍 치켜든다. 내가 웃는 이유를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때의 내가 시간의 속성을 알고 있더라면, 분명 이 순간이 멈추길 고대했을 테다.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당도하는 순간, 그 사실이 기쁨이 되는 순간을.
빛을 잃을 때면, 어김없이 그날로 돌아간다. 동그랗게 돌아 사랑하는 사람과 조우한다. 타인의 무심함에 지쳐버린 날, 결국 혼자됨을 감각하는 모든 순간. 나는 공전하는 회전목마에 앉아 목도했던 다정의 자취를 다시금 확인한다. 닳지 않는 기쁨, 반짝이는 얼굴들. 그 기억은 몇 번이고 다정에 기댈 동력이 된다. “내가 여기 있어”라고 말하는 존재가 주는 위안은 거대하다. 빙그르르 돌아오는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