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2023년,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 함께할 다섯 편의 영화들

27 Jan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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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연말, 새해 등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단어들. 그러나 그 단어들 뒤에는 ‘인생은 기대한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진실이 숨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매번 홀린 듯 더 밝은 미래를 기대하죠. 하지만 가장 조용하고 어두울 때, 우리는 진짜에 가까운 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 여정을 담은 다섯 편의 영화를 소개합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프란시스 하>, 2014

 

“우린 세계를 접수할 거야. 난 출판계 거물이 될 거고, 넌 유명한 현대 무용수가 될 거야. 너에 관한 책을 낼 거고 우릴 씹던 애들도 한 권씩 사겠지. 파리에 별장을 사고 애인을 만들고 졸업식에서 연설도 할 거야.”

이루고 싶은 꿈은 너무 멀고, 현실은 좌절스럽지만 당장이라도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말해본 적 있나요?

 

스물일곱의 프란시스는 무용수를 꿈꾸는 견습생입니다. 곧 있을 크리스마스 공연에 설 거라는 기대는 보란 듯이 엎어지고, 남자친구와 이별하고, 함께 살던 친구도 갑자기 독립을 선언합니다. 나쁜 일은 왜 이어달리기를 할까요? 열심히 살아도 삶은 쉽게 나아지지 않지만 프란시스는 브루클린 시내를 경쾌하게 뛰어다닙니다. 

 

담당 교수는 프란시스에게 사무실 직원 자리를 제안하지만 다른 계획이 있다며 거절합니다. 실은 계획도 없으면서 무용수와는 무관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 거짓말을 하죠. 분명 꿈을 이루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다양한 일들이 있을 텐데, 그걸 시작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목표에 가까워지기 위해 해야할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란시스가 제안을 거절한 이유처럼요.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쓸모없다고 치부하는 일이 결국에는 목표에 가까워지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겨울이 지나고 프란시스는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안무를 구상합니다. 대안을 찾아가며 성실하게 나아갑니다. 혼자 생활하기에 알맞은 크기의 집을 구한 프란시스. 영화는 무용수가 된 주인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낙담하고 실망할 일들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기에 주어진 삶을 더 긍정하게 됩니다. 정체된 것 같아 보이는 내 모습이 실은 수평적 성장을 겪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프란시스 하>는 조용히 성장의 의미를 던지는 작품입니다.





<패터슨>, 2017

 

매일 반복되는 권태로운 삶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패터슨>의 주인공 패터슨은 그 반복적 일상에 대해 경외감을 갖는 인물입니다.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에서 아내,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은 매일 아침 시리얼 한 그릇을 먹고, 도시락을 챙겨 출근하며, 버스 운행 시작 전 혹은 점심시간에 틈틈이 시를 씁니다. 창 바깥의 풍경, 버스에 탄 승객들, 사람들과의 대화. 그를 둘러싼 모든 세계는 시가 됩니다.


주말엔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거나, 바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정도로 그의 일상에 이렇다할 변화는 없습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일상적인 장면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찰나에 우리에게 어느 순간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패터슨은 보여주기 위해 시를 쓰지도 않고, 변화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지루하게 느껴지는 일상에도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걸 ‘시’를 통해 발견하고, 그 작은 기쁨으로 매일을 살아갈 뿐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의 속도가 때론 힘에 부칠 때가 있습니다. 성공, 명예, 인기, 돈…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지표에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합니다. 과시할 수 없다면 인정받을 수 없다 말하고 평범하고 반복적인 삶은 초라하다고 치부하는 우리는 이 영화에게 빚을 집니다. 감독 짐 자무쉬는 다른 작품에서도 꾸준히 보여준 ‘단조로움은 단조로움의 가치가 있다'라는 메세지를 <패터슨>을 통해서도 보여줍니다. 패터슨에게도, 우리에게도 월요일은 어김없이 돌아옵니다. 저번주와 같은 월요일이지만 다시 돌아오지 못할 월요일입니다.

 


 


<처음 만나는 자유>, 2000

 

“Well, you look normal.”

- “I’m sad.”

 

열일곱의 수잔나는 다량의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자살시도 후, 부모에 의해 강제로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택시 기사는 멀쩡해 보이는데 무슨 짓을 한거냐고 묻자, 수잔나는 슬프다고 대답할 뿐입니다. 병동에서 다양한 아픔과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또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함께 탈출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세상 밖에서도 그들은 진정한 자유를 느끼지 못합니다. 


친구의 자살, 반복되는 입원을 거치며 수잔나는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간호사에게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꾸준한 상담은 그녀에게 있어 가장 필요했던 자기고백의 시간이 되고, 결론적으로 수잔나는 ‘경계 인격 장애’ 라는 심각하고 어려운 이름을 붙일 만큼 비정상이거나 미친 게 아니라 단지 부모에게조차 존중받지 못해 슬프고 외로웠을 뿐임을 알게 됩니다.


2000년에 개봉한 이 영화의 원제는 <Girl, Interrupted>로 ‘방해받은 소녀’라는 의미입니다. 영화의 배경이되는 1960년대는 세계 전쟁이 끝난 직후로 문화,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부분에서 변화를 겪는 태동기였습니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개인은 종전의 해방감과 안도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나는 누구이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불안함 또한 강했던 시기입니다. 퇴원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수잔나는 처음 병원으로 향할 때 탔던 그 택시를 우연히 만납니다. 먼 길을 지나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수잔나. 자유는 이미 자신 안에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현실을 부정하거나 바꾸려 해도 내 안의 슬픔에서 도망치려고 하는 이상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만날 수 없음을 알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토니 타키타니>, 2005

 

고독이 사람이라면 토니 타키타니가 아닐까 싶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토니의 아버지는 재즈 음악가로 바빠 늘 집을 비웁니다. 혼자가 익숙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사람과의 교류가 적었던 그는 오히려 감정이야 말로 비논리적이고 미성숙하다는 생각으로 정교한 기계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이코라는 여성을 만나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함께 미래를 그립니다. 그 진심을 토니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당신처럼 마음이 끌리게 옷을 입는 사람은 없었다’라고.


에이코를 통해 ‘고독하지 않은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 토니였지만 일련의 사건들로 다시 혼자가 됩니다. 영화 전반에 깔린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과 낮은 채도의 영상은 고독의 색을 진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 태어나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람에 기대어 외로움을 달랩니다. 그래서 타인의 소멸과 부재를 통해 비로소 내가 정말 이 세상에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합니다. 이 영화 또한 그런 역할을 해주는 섬세한 작품으로 추천드립니다.





<시네도키, 뉴욕>, 2008

 

연극 연출가 케이든은 언제나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면도 중에는 수도꼭지가 터져 이마가 찢어지고,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갔더니 신경과에 가도록 권유받으며, 극장을 운영하지만 성공적인 작품 하나 만들지 못해 꿈꾸던 미래와도 계속 어긋납니다. 어떤 것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그의 얼굴은 늘 위태롭습니다. 아내와 딸 또한 떠나버린 그에게 뉴욕에 있는 거대한 규모의 창고 안에서 무대를 선보일 새로운 기회가 찾아옵니다.


연극은 케이든의 삶 자체로 구성됩니다. 도시를 실물 크기로 만든 세트장 속에서 배우들은 그가 한 말을 토시 하나 빠뜨리지 않고 말하는가 하면, 본인들이 더 케이든인 것 처럼 그의 행동을 추측해서 따라하기도 합니다.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별과 상실을 겪으며 주인공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고 그 모든 과정 또한 작품에 반영됩니다. 어디까지가 연극이고 실제 삶인지 점점 불불명해지며 며칠, 몇 달, 몇 년의 시간에 걸쳐 작품은 극 속의 극 속의 극으로 빠져들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규모가 됩니다.


영화 안에선 등장하지 않는 단어 ‘시네도키’(Synecdoche)는 제유법이라는 뜻으로 사물의 한 부분으로 그 사물의 전체를 나타내는 수사법이자 은유의 일종입니다. <시네도키, 뉴욕>이라고 칭한 건 삶의 일부가 때로는 전부이기도 하고, 전부가 때로는 일부이기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대 속 배우들은 창고 안에서 맡은 작은 역을 연기하지만, 각자의 인생에서는 더 많은 것을 보여주니까요. 


최승자의 시 ‘내 청춘의 영원한'에서 작가는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을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우리는 한가지 감정에 매몰될 때도 있고, 세가지 감정을 동시에 연기하며 살아가기도 하며 그 안에서 영원히 배회하는 듯 합니다. <시네도키, 뉴욕> 또한 그런 영화입니다.




Sometimes you win, 

Sometimes you learn.

Though you can not seize nor hold the smell, it has a decisive effect on the matter of our memory and emotion and believes on its vitally of influences on our decision among our lives. GRANHAND gives faith towards the value of the fragrance and consistently pursues to make the scent part of our regular living. Although it may be slow nor has perfection, the variety of contents that our brand is offering will build the unique value of the experience that no other brand will possess. GRANHAND will not be a product where it vanishes with ease nor be neglected. It will continuously illuminate with a distinct presence and yield to warm people’s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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