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나는 도서관에 간다 #6 손기정문화도서관

26 Jul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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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볼 것 많은 대형 서점, 주인의 취향이 담긴 개성 있는 독립서점과 북카페 등 책을 다루는 다양한 공간이 많은데요. 정작 도서관은 10대 시절 공부할 때 이후로는 거의 찾아간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서점은 상품을 팔고 구매하는 상점의 느낌이 강하다면, 도서관은 인생에서 목마름을 느낄 때 찾게 되는 개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도서관에 간다’는 그랑핸드 주변부터 시작해 서울에 있는 도서관을 한 곳씩 방문해서 살펴보는 탐방기입니다. 여섯 번째로 소개해 드릴 도서관은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손기정문화도서관’입니다.




 


마라톤 영웅을 기린 도서관

손기정문화도서관은 서울시 중구 손기정체육공원 내에 위치해 있습니다. 서울역에서부터 서울로 7017을 건넌 뒤, 경사가 조금 있는 언덕을 오르면 손기정체육공원에 도착할 수 있는데요. 충정로역 5번 출구로 나와 손기정 선수의 일대기가 벽화로 그려진 손기정둘레길을 따라 걸어오는 방법도 있으니 편하신 길로 선택해 보면 좋겠습니다.


손기정체육공원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를 기념해 조성됐어요. 손기정 선수는 일제강점기에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마라톤 영웅이죠. 손기정 선수의 모교인 양정고등학교가 있던 이 자리에 도서관이 세워졌다고 해요.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에 올림픽 우승 당시 수여 받아 심었던 대왕참나무, 손기정 선수의 동상, 손기정 탄생 11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추모 조형물을 차례로 볼 수 있었어요.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 국적의 마라토너로 달려야 했던 선수의 이야기를 보고 난 뒤 먹먹해진 마음을 안고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손기정문화도서관은 손기정기념관 뒤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붉은 벽돌의 외관이 돋보였는데요. 개관한 지 22년 만인 2021년에 규모를 확장하고 리모델링해서 개관했다고 해요. 도서관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서니 ‘물의 정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그마한 분수와 햇빛에 반짝거리는 물결을 감상하다가 도서관의 입구로 들어섰습니다. 

 

경주로처럼 이어진 서가를 따라

1층 라운지에는 도서관의 정기 간행물을 보고 휴식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습니다. 라운지 양옆으로 외부 돌담과 물의 정원이 보이는 긴 창들이 벽 사이사이에 있어 답답하지 않더라고요. 잠시 잠을 청하거나 음료를 마시며 창밖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위층과 연결된 계단 옆으로는 긴 목재 의자가 놓여있어 편안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열람실인 2층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유려하게 뻗은 곡선형 서가였습니다. 마치 육상 트랙처럼 이어진 서가를 따라 공간을 둘러보니 금세 열람실 한 바퀴를 돌 수 있었는데요. 곡선으로 이루어진 책장 덕분에 높이가 낮은 부분에서는 책이 엎어진 상태로 꽂힌 재밌는 풍경도 볼 수 있었습니다.



각 도서 분류들은 서가를 중심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샹들리에 아래 꽃으로 장식된 긴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업무에 열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문학 도서 코너, 지구본과 캠핑 의자를 비치해 작은 캠핑장을 연상하게 했던 여행·역사 코너, 큰 소파에 앉아 거실처럼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던 기술과학 코너까지. 천천히 열람실을 구경하며 마음이 가는 대로 책 몇 권을 집어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중 감명 깊게 읽은 책 <아내의 시간>을 소개합니다. 아내와 세 명의 자녀를 향한 작가의 시선을 사진과 글로 담은 책입니다. 작가는 군대, 유학, 일 등의 이유로 결혼 생활 동안 아내와 자주 떨어져 지내다 아내의 정년퇴직으로 동거를 다시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이와 따로 또 같이 동행하며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엿볼 수도 있고요. 마음에 와닿았던 책의 마지막 장, 작가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일부를 전합니다.


 


p. 260 당신은 스스로 배경이 되어 어디에서도 고향처럼 느낄 수 있도록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당신을 만나기 전처럼 세상을 회색이라고만 여겼다면 세상에서 무엇을 읽어 낼 수 있었을까요. 당신은 세상이 수많은 암시로 가득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했지요.  


사랑에 상대의 마음에 귀 기울이겠다는 태도도 포함되어 있다면 손을 잡고 걷는 대신 각기 다른 골목을 홀로 걷는 지금의 방식도 40여 년 전 당신의 모든 것에 몰입했던 그때와 다르지 않다고 여겨요. 골목 끝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궁금해하며 상대의 하루 혹은 며칠 치 삶에 귀를 쫑긋 세우잖아요.


남편과는 다른 골목을 걸을, 아내와는 다른 식당에서 식사할 자유가 허락되는 관계는 걱정이 지배했던 때는 불가능했었죠. 바람이 통하는 사이를 허락하니 고되지 않아서 비로소 세상을 우리 품 안에 담을 수 있게 된 듯싶어요. 나는 골목 끝에서 당신과 새로운 시선으로 재회하는 것이 여전히 좋으니 간섭할 필요가 없는 우리 동행을 더 계속하고 싶습니다.

 

도심 속 작은 문화공간

도서관에 들어온 지 시간이 한참 지나 책을 읽을 때쯤 알게 된 것이 있는데요. 도서관 내에 음악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공공도서관이라 하면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먼저 떠오르기 마련인데, 책 읽는 데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잔잔한 음악 덕분에 되레 독서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책에 음악이 더해지니, 큰 규모의 도서관은 아니지만 이곳이 편히 쉬다 갈 수 있는 도심 속 아늑한 문화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도서관에서 나와 손기정체육공원을 거닐어봤습니다. 운동장에서 운동하는 주민들, 게이트볼을 즐기는 어르신들,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선생님과 친구 손을 꼭 잡고 걷는 어린이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으로부터 여러 갈래의 산책로가 있어서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나와 가볍게 걷거나 어디든 앉아 휴식을 취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체육시설과 산책로, 도서관을 모두 갖춘 장소라니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겐 충분히 매력적인 장소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가뿐한 마음으로 손기정문화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고 걸으며 일상에서의 쉼을 누려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손기정문화도서관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손기정로 101-3

운영시간: 평일, 주말 09:00~22: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법정공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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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times you lea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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