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향과 사진의 역학 관계: 스테판 쇼어

22 Jul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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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은 기억의 매개입니다. 일상에서 우연히 익숙한 향을 맞닥뜨릴 때, 낯선 향에서 왠지 모를 그리움을 느낄 때, 우리는 기억의 파편을 건져 올립니다. 심지어 그날의 분위기, 따뜻한 정도, 기분까지도 떠올릴 수 있죠. 마치 해상도 높은 사진을 보는 것처럼요. 이러한 향의 특질은 사진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진 역시 당시의 현장감을 오롯이 담고 있어, 추억을 상기하게 만들고 때론 먹먹한 그리움을 선사하니까요. 


독자 분들은 향과 사진의 어떤 부분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거장들의 사진을 토대로 향의 존재를 탐색하고 연결된 감각을 가만히 바라 보세요. 기억과 경험의 특별한 연속성을 낯설게 바라봄으로써 매 순간을 보다 입체적으로 느끼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 거예요. 


스테판 쇼어가 포착한 일상의 잔상

© Nicole Angeles


첫 번째로 소개할 포토그래퍼는 미국 스냅 사진의 거장 스테판 쇼어(Stephen Shore)입니다. 그는 일상적인 도구를 낯설게 포착하면서도 색을 선구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입니다. 광고와 패션, 예술 사진의 영역을 넘나들며 작업한 사진가이자, 미국 토착 풍경을 담은 사진으로 사진계에 한 획을 그었죠. 1975년 구겐하인 펠로우쉽(Guggenheim Fellowship)을, 2010년에는 왕립 사진 협회(Royal Photographic Society)로부터 명예 펠로우쉽을 받았습니다.





© stephenshore.net


그의 초기 커리어 중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앤디 워홀(Andy Warhol)이 운영하던 스튜디오 팩토리에 자주 방문했다는 사실인데요. 그는 워홀과 그를 둘러싼 크리에이터들의 사진을 찍으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작업물을 살펴보면 그의 작품 속 피사체들은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고,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냅니다. 무척 편안한 환경에서 이뤄진 촬영임을 유추할 수 있지요.


당시의 분위기를 오롯이 담고 있는 사진들에서 우리가 경험해 본 적 없는 순간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매캐한 담배 냄새부터 건조한 공기와 서늘한 온도감까지. 만약 실제로 경험한 순간들이라면 당시의 감정들이나 이야기까지도 떠올릴 수 있겠지요. 마찬가지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워홀 팩토리에서 맡았던 향을 일상에서 마주한다면, 어떤 장면을 세밀하게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스테판 쇼어가 촬영한 것은 특별한 것 없이 단조로운 순간들입니다. 그러나 지극히 평범한 순간들도 그의 시선을 통과하면 낭만적인 장면으로 변모하죠. 이는 우리 기억 속 찰나들이 저마다의 분위기와 그 순간만의 향으로 기억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평범한 듯 아름다운 장면들의 연속. 스테판 쇼어가 담아낸 순간 속 특별함을 함께 따라가 봅니다.




고요히 아름다운 평범한 날들




© stephenshore.net


위 사진들은 스테판 쇼어가 1971년에서 1979년까지 촬영한 사진을 모은 작품집 ‘Transparencies’의 일부입니다. 차가 한대도 없는 한적한 도심의 모습,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패스트푸드, 햇볕이 내리쬐는 주차장 등. 일상적 소재를 주목함으로써 순간을 생동감 있게 담아냈죠.


작품집의 사진을 보다 보면 문득 귀퉁이에 있는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릅니다. 쾌청한 초여름, 고요한 아침에 느껴지는 신선함을 머금은 공기. 달큰한 꽃향과 짙은 풀향의 어우러짐. 그의 사진이 더 다정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기억의 출현에 있습니다. 작품을 마주한 사람들은 사진 속 장면에 빗대어 나만의 고유한 기억을 떠올리지요.


사진과 향은 공통 요소를 다수 갖고 있지만, 동시에 극명히 다른 지점도 존재합니다. 향은 주관적으로 읽히기 쉬워 사람마다 다른 감상을 내놓는 반면, 사진은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보다 객관적이고 사람들이 느끼는 감상도 비슷한 편입니다. 사진은 경험해 본 적 없는 순간을 상상할 수 있게 돕고, 향은 기억 어귀에 있는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지요. 바로 이 지점에서 스테판 쇼어 사진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스테판 쇼어의 작품은 낯선 순간으로 감상자들을 초대합니다. 순간을 상상하는 것을 넘어 향과 같이 개인적인 기억을 상기하게 만들죠.


스테판 쇼어는 어떻게 해야 보는 이들의 기억을 건들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위 프로젝트는 대부분 35mm 라이카로 촬영되었는데, 무척 개인적이고도 친밀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무엇보다 요소와 구성, 색상에 대한 실험이 두드러지는데요. 빛을 적극 활용하는 특유의 기법이 적용돼 전반적으로 다채롭습니다.





© stephenshore.net


위 사진들은 컬러 스냅 사진의 정수라 불리는 작품집 ‘Uncommon Places' 속 작품입니다. 해당 작품집에 표집된 사진은 작가가 로드 트립을 떠나 마주한 여행의 순간들을 담고 있죠. 탁 트인 도로와 자연 풍경은 물론, 연인의 일상 등 지극히 개인적인 모습을 포착하기도 했습니다. 


위 사진처럼 스테판 쇼어의 작품 대부분이 맑은 날의 미국 도심을 비추고 있습니다. 독자 분들은 작품 앞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또, 어떤 향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가요? 그의 작품집을 보면 다음과 같은 향들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비가 시원하게 쏟아진 뒤 느낄 수 있는 청명함, 빗물에 젖은 나무 냄새, 창가에 널어놓은 이불이 펄럭이며 발산하는 약한 비누 냄새 등. 상상해 볼 수 있는 향은 무궁무진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진을 입체적으로 해석했을 때, 순간을 다채롭게 기록하고자 하는 마음도 생기지요.


그의 사진이 더욱 특별한 점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사진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게 만든다는 점인데요. 이런 상호작용이 가능한 이유는 사진 속 풍광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묘한 나른함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상황에 놓여본 적 없더라도, 사진 속 나른함은 경험해 본 적 있죠. 쨍하도록 파란 하늘, 선선한 바람, 한산한 거리, 넓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빛. 그의 사진을 통해 우리는 일상의 감각을 새삼 떠올립니다. 




스테판 쇼어에게 영감을 받은 작가 요시고

© yosigo instagram


스테판 쇼어는 독보적인 작품의 존재감 덕분에 많은 포토그래퍼의 롤모델로 거론되기도 합니다. 스페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포토그래퍼 요시고(yosigo) 역시 스테판 쇼어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요. 요시고는 탄탄한 팬층을 거느린 사진작가로, 국내에서는 그라운드 시소에서 진행한 전시를 통해 이름을 알렸죠. 그가 스테판 쇼어에게 영감을 받았음이 두드러지는 부분은 바로 색상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과 나른하면서도 평화로운 분위기입니다. 


파스텔 톤이 한 겹 칠해진 듯 낭만적인 분위기와 시선이 닿는 곳곳에 다채로운 색상이 발현합니다. 요시고의 작품 중에는 스페인의 아름다운 해변과 건축물을 조명한 작품이 많은 편인데, 스테판 쇼어와 마찬가지로 가본 적 없는 여행지를 감각하게 하는 신묘한 힘을 지녔습니다. 지구 반대편 여행지로 떠나기 망설여지는 요즘, 요시고의 사진을 통해 간접적인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해안가의 작은 모래 알갱이의 열기와 사람들의 이야기소리, 미지근한 수온과 염분을 머금은 바닷물 냄새까지 상상해 볼 수 있으니까요.



© (위) stephenshore.net (아래) yosigo instagram


스테판 쇼어와 요시고의 공통점은 낭만을 찾기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스테판 쇼어는 자신이 발붙인 땅과 지역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미국의 곳곳을 프레임에 담았고, 마찬가지로 요시고 또한 자신이 몸담은 지역을 관찰해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떠나지 않고도 일상의 아름다움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소개한 작가들처럼 카메라를 들어 사랑해 마지않는 순간들을 기록할 수 있죠. 예술가들은 예술이 다른 차원의 대상을 발견하는 게 아닌 기존의 대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지겨움을 느끼던 차였다면, 일상의 작은 요소들에 집중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 어떨까요? 


새벽녘 싱그러운 냄새로 가득한 출근길의 분위기와 퇴근 길에 어스름해지는 도심의 전경을 파인더에 담거나, 원두 볶는 냄새가 가득한 카페에서 갓 내린 커피, 계절의 변화에 맞춰 시시각각 변화하는 가로수 앞에서 카메라를 켜는 것처럼.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향과 함께 깊이 느낀 뒤 사진으로 기록하는 습관을 만들어 보세요. 평범한 일상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무수히 많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을 테니까요. 



Sometimes you win, 

Sometimes you lea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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